내가 소요거사(逍遙居士) 된 사연

다음 글은 장회익선생님과 법현선사께서 만나고 헤어지고, 편지와 책과 글과 공부를 주고 받으신 십 여 년에 걸친 이야기입니다. 두 분의 글이 마치, 동일한 하나의 사건을 두 사람이 기술하는 소설 같아서 더 재밌습니다.

장회익
2019년 9월 6일

  아래 글에서 자세히 알게 되겠지만, 법현선사(法玄禪師)와 내가 직접 나누어 본 대화는 길어야 원고지 대여섯 쪽이 될 것이다. 그 짧은 내용조차 지금 내 기억 속에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오직 강한 만남의 기억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런데 2013년 무렵, ‘월간에세이’에서 ‘만남’이라는 소재로 글을 하나 써달라기에 당시 스님의 소재에 대해 전혀 알 길이 없는 상황에서 십여 년 전의 기억을 거슬러 이 스님과의 만남을 글 속에 되새겨보았다. 그리고 뜻밖에도 이삼년 전 스님으로부터 저서 한 권과 영산대학교에서 발표하신 법설 문을 받았고, 반가운 나머지 스님과의 만남에 대해 내가 썼던 글과 함께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후 스님은 새로 설하신 법문들을 종종 메일로 보내주셨는데, 대체로 너무 난해하여 가히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 안에 어떤 깊은 뜻이 담겼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가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5월 16일, 스님께서 임제정맥(臨濟正脈) 조실(祖室)로 추대되셨다고 하면서 개당일구법문(開堂一句法門)이라는 책 한 권 분량의 문헌 원고를 보내주셨다.  나는 임제정맥 조실이 어떤 자리인지 잘 알지는 못하나 이 문헌 안에 들어있는 불조원류(佛祖源流) 임제정맥(臨濟正脈) 연담계보(蓮潭系譜)[임제선원(臨濟禪院)]이라는 계보(<부록>에 게재)를 보면 결코 가벼운 자리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하여 이 새 자리를 연다는 뜻의 개당(開堂)에 즈음하여 그 간에 마련한 법문들을 펴내는 책이 바로 개당일구법문(開堂一句法門)이다. 그런데 그 안에는 송구스럽게도 증소요거사님송(贈逍遙居士任頌)라 하여 “소요 장회익 거사님께 드리는 송”이라는 송시(頌詩)가 한편 들어있다. 

이제 그 사유는 내가 구구히 설명하는 것보다 스님이 내게 보내주신 서신(2019년 5월 17일자 이메일)을 직접 읽어보는 것이 더 분명하리라 본다. 

 
존경하는 소요 거사님께 

  그간 존함 자를 함부로 부르는 것이 졸납에게는 여간 송구스러웠는데 호를 받아주시니 감사하옵고 우리 불법문중에서는 진리의 대도에 거주하는 세간 선비를 거사居士(居道之士)라 칭하는 까닭에 세간 학문의 선생 칭호를 쓰지 않고 거사님으로 존칭하겠나이다.

(중략)

다음 원고는 내용을 조금 보완 수정하였사오니 살펴주시옵고, 아울러 자기의 변함없는 근원을 찾고자 하는 현대 지성인들과 함께 사유코자 하는 졸납의 간절한 뜻으로 여겨주소서.             

贈逍遙居士任頌             소요 장회익* 거사님께
증소요거사님송             드리는 송 

靑山本是衲僧居             본래 푸른 산은  
청산본시납승거             참선 납자 거처지만 

高士亦尋林水間             세간의 높은 선비  
고사역심임수간             또한 산림 찾으시네. 

自去自來如白雲             스스로 가고 오는 
자거자래여백운             흰 구름 흘러가듯 

逍遙大道相逢顔             대도에 소요하며
소요대도상봉안             서로 얼굴 마주했네. 

*장 회익 거사님은 서울대학교 자연 과학 대학 명예교수로서 현재 충남 아산의 우거에서 노년을 청수한 학처럼 대자연 속에서 소요자적하시기에 졸납이 삼가 호를 소요逍遙라 제題하고 송頌하였습니다.

졸납과의 인연은 이미 거사님께서 수년전 월간 에세이에 “어느 만남의 회상”이란 제목으로 기고하신 내용에 잘 소개된 바와 같이 20여 년 전 졸납이 제산 선사를 시봉하며 서울 봉천동 산 밑의 작은 주택에서 지날 때 일상 정해진 똑같은 시간에 조석으로 뒷산에서 두어 시간씩 말없이 화두를 들고 산책로를 왕래하며 정진하던 때였습니다.

거사님도 일상 정해진 시간에 전철역에서 걸어 서울대 뒷산 오솔길로 출근하시던 터라 우연하게도 매일 거의 똑 같은 시간에 서로 만나 뵙게 되는 인연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졸납은 화두 하나로 더불어 살던 때라 오고 가는 사람들에 대한 인사를 전혀 불고하고 살았기에 서류가방 하나 들고 산책길을 오고가는 청수하신 자태의 노신사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저 말없이 몇 년을 무심하게 지나쳤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의 매일 만나면서도 그냥 지나치는 목석같이 우둔하고 무심한 누더기 중의 무례함이 오죽 답답하고 난처하셨던지 먼저 말문을 트시고 자기소개를 하신 후로 졸납에게 저술하신 책도 두어 권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그 내용은 저명하신 자연과학자로서 자연과 인간이 하나의 생명체임을 동서고금의 해박하신 지식으로 밝힌 온 생명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책이었습니다.

당시 졸납은 참선납자로서 선생님께 드린 인생의 궁극적인 질문으로써 자기가 허망하고서는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보는 애정도 허망할 수밖에 없으니 여기서 변치 않는 진리를 찾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 절대모순인 바 먼저 이러한 절대 모순을 극복하려면 우리의 허망한 “몸과 마음을 쓰지 말고 한번 말해보라”는 졸납의 화두를 한번 생각해 보시도록  편지로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이 졸납의 화두는 세간에서  지성적 가치를 제 일로 삼는 학자들에게는 너무나 뜻밖의 생소하고 난처한 문제 제기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사님은 훌륭한 사유를 갖추신 지성인이시라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의 몸이란 풀끝의 아침 이슬과 같이 덧없는 것이요, 우리의 생각과 의식이란 경계 따라 찰라마다 변하고 잠만 들어도 없어지고 마는 허망한 마음임을 알 수 있기에, 그저 세상 물정 모르고 엉뚱한 문제를 제기하는 멍청한 졸납의 말에서 감히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인생 누구나가 처한 엄연한 절대모순을 깊이 한번 돌아보고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셨으리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화두의 중요성은 누구든 여기에 한 마디 자신 있게 할 수 있다면 날마다 양고기 걸어 놓고 개고기 팔아먹는 모순된 행동을 서슴없이 하면서 변함없는 진리를 입으로 말한다 해도 자기 마음에 추호의 모순이 없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겉으로 아무리 부처님 같은 모습으로 부처님 같은 행동을 한다 해도 변함없는 진리를 입으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니 또한 세간에서 말하는 모든 학문적 진리를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졸납의 그러한 무례를 화내시거나 탓하지 않으시고 졸납과의 잠시 스쳐간 인연을 “어느 만남의 회상”이라는 담박한 수필로 남기신 것을 졸납에게 15년이 지나서도 잊지 않고 보내주셨으며 또한 졸납이 근년에 영산대학교에서 설한 법문을 보시고 자상한 메일을 주셨으니 다음과 같습니다.           


“법현 선사님,

보내주신 저서와 영산대학교에서 발표하신 법설 문을 잘 받아 공부하고 있습니다. 특히 법설문은 너무도 유익한 내용이어서 무례한 일이 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제가 계획하는 책에 인용하여 독자들과 그 의미를 나누고자 합니다.

혹시 공개하여 논의되지 않아야 할 부분이나 사유가 있으시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지금도 조용한 산중에서 구도에 더욱 정진하시는 줄 압니다. 부디 큰 성취가 있으시기 바라며 또 유익한 가르침을 세상에 더 많이 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아산에서  장회익 드림 “

이로써 졸납은 거사님의 호를 소요逍遙라 하고 송을 붙인 인연을 간단히 밝히는 바이며 보내주신 졸납에 대한 거사님의 에세이를 다음에 소개하는 바입니다.

법현선사



어느 만남의 회상

장 회 익

만남-월간에세이13. 2013년 8월호 8-11쪽

  나는 교수 생활 마지막 십여 년 간 다소 특별한 방식으로 출퇴근을 했다. 새벽 6시 이전에 집을 나와 전철을 타고 서울대입구역까지 간 후, 다시 산길을 거쳐 서울대 교정에 있는 내 연구실까지 매일 걸어가는 거였다. 모르는 사람들은 서울대입구역에 내려 서울대 교정까지 걸어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지 모르지만, 사실 이 거리는 ‘걸어 다닐 거리’가 아니다. 버스로도 서너 정거장은 되고, 택시를 타도 기본요금이 넘게 나온다. 그런데 이 사이에는 차가 다니는 큰 길 외에도 우회로가 하나 있다. 골목길들을 조금 지나 주변의 산으로 들어서면 산길을 거쳐 교정으로 들어설 수 있는데, 거리로 치면 약간 더 멀지만 나는 산을 좋아했기에 늘 이 길로 다녔다. 대략 삼사십 분 걸리는 이 구간은 그날그날 내가 강의할 내용을 머릿속에 정리할 좋은 기회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나는 출근을 위해 이 길을 이용하는 것이지만, 산길이 워낙 좋다보니 주변에 사는 주민들도 등산으로 혹은 산책 삼아 이 길을 많이 이용했다. 그 가운데 어떤 이들은 서로 얼굴을 알아볼 정도가 되기도 했지만, 대개는 무심히 지나쳤고 별다른 관심을 가지거나 말을 건네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그 행인들 가운데 특별히 눈에 띄는 분이 한 분 있었다. 별로 젊지도 늙지도 않은, 한 마디로, 연령을 가늠하기가 어려운 한 스님이었는데, 언제나 자세를 꼿꼿이 하고 정면만 주시하고 걷는 모습이 도무지 쉽게 범접할 수 없는 풍모였다. 나하고는 자주 지나치다보니 눈 인사정도는 하게 됐지만, 무표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럴 즈음 참 이상한 일이 생겼다. 이 스님을 너무 자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간에 정기적으로 같은 길을 지나다보면 자주 만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이 경우는 그 정도가 달랐다. 나는 어쩌다 조금 일찍 가는 날도 있고 조금 늦게 가는 날도 있는데, 그래도 그 스님을 늘 거의 비슷한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몇 번 정도 그런 일이 있다면야 우연으로 돌리겠지만, 그런 일이 너무도 잦고 지속되니 이상하게 여지지 않을 수 없었다. 스님과 나 사이에 어떤 텔레파시라도 있어서 서로 같은 시간에 나서도록 만드는 것일까? 너무도 도통하신 스님인지라 내 거동을 미리 내다보고 거기에 맞춰 길에 나서시는 걸까? 그렇더라도 왜 굳이 내 거동에 맞추어 나오실까?

이렇게 궁금해 하던 어느 날, 결국 수수께끼가 풀리고 말았다. 저 쪽에서 오시던 스님이 어느 지점에서 획 돌아서 오던 길을 되돌아가시는 게 아닌가? 아하, 이 스님은 이 길을 몇 번이고 반복해 걷고 계시는구나! 그러니 내가 조금 일찍 와도, 조금 늦게 와도 거의 같은 구간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자주 마주치다 보니 스님과 내가 같은 방향으로 걷는 일이 종종 생겼고, 그 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생겼다. 스님은 일반 사찰에 머무는 게 아니라 ‘임제선원(臨濟禪院)’이란 소박한 간판을 단 한 일반 주택에 머물며 오로지 수도에 정진하는 분임도 알게 되었다. 그럭저럭 삶의 자세에서 서로 보이지 않는 공감이 느껴져 책들도 더러 교환했지만, 우연히 같은 방향으로 걷게 되는 몇 십 분이 말을 나눌 기회의 전부여서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나는 대학에서 퇴직을 했고, 그 후 이 길을 걸어 다닐 이유가 없어졌다. 물론 스님에게 내가 떠난다 어떻다 하는 말도 안 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만났던 대로 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헤어졌다. 하지만 불가에서는 옷깃 하나 스치는 것도 영겁을 통해 맺어진 인연이라 하지 않던가? 이런 잠간의 스쳐 감도 서로의 자세에서 그리고 서로의 눈빛에서 서로 간에 삶의 도반임을 확인한 스침이었다면, 이 또한 소중할 수밖에 없다.

그 후 십년이 훌쩍 지나갔다. 며칠 전 나는 그간 쌓다두었던 서류들을 정리하다가 스님이 내게 보내준 서신 하나를 발견했다. 정말 선승답게 정갈한 필치로 적어 보낸 글이었는데, 아쉽게도 나는 정리 작업에 바쁜 나머지 다시 한 번 읽지 못하고 보관만 해두었다. 언젠가는 다시 찾아 읽겠다는 마음과 함께, 스님과의 인연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징표로 고이 간직하고 싶다. 지금도 스님은 그 산길을 같은 자세로 오르내리고 계신지, 혹시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어떤 인연을 펴고 계신지? 

장회익. 만남-월간에세이13. 2013년 8월호 8-11쪽.

 
<부록> 佛祖源流 臨濟正脈 蓮潭系譜(臨濟禪院)

불조원류 임제정맥 연담계보(임제선원) 

본사 석가모니불 
제1세  마하가섭존자           
제28대 보리달마존자           
제33세 대감혜능선사           
제38세 임제의현선사           
제39세 흥화존장선사           
제40세 남원혜옹선사           
제41세 풍혈연소선사           
제42세 수산성념선사           
제43세 분양선소선사           
제44세 석상초원선사           
제45세 양기방회선사           
제46세 백운수단선사           
제47세 오조법연선사           
제48세 원오극근선사           
제49세 호구소륭선사           
제50세 응암담화선사 
제51세 밀암함걸선사 
제52세 파암조선선사 
제53세 무준원조선사 
제54세 설암조흠선사 
제55세 급암종신선사 
제56세 석옥청공선사 
제57세 태고보우선사 
제58세 환암혼수선사 
제59세 구곡각운선사 
제60세 벽계정심선사 
제61세 벽송지엄선사 
제62세 부용영관선사
제63세 청허휴정선사 
제64세 편양언기선사
제65세 풍담의심선사
제66세 월담설제선사
제67세 환성지안선사
제68세 호암체정선사
제69세 연담유일선사
제70세 양악계선선사
제71세 침송성순선사
제72세 덕운천훈선사
제73세 한양용주선사
제74세 취운도진선사
제75세 만암종헌선사
제76세 서옹상순선사
제77세 제산종성선사
제78세 현봉법현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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