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상대성이론 100+4년 – 제8회. SF와 상대성이론

2015년,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100세가 되었다. 특수상대성이론이 100세가 된 것은 10년 앞선 2005년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은 과학이론의 본성이 무엇인지 잘 드러내 주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고, 시간과 공간과 우주와 물질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이론이면서도 동시에 실증적으로 권위를 인정받은 이론이기도 하다.

그만큼 역사적인 맥락이 풍부하며, 또한 문화적 영향도 다양하다. 무엇보다도 시간과 공간에 대한 철학적 논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녹색아카데미 과학칼럼에서는 일반상대성이론이 만들어지고 다듬어지는 역사적, 철학적 과정을 9회에 걸쳐 살펴본다.

2019년 10월 1일
글 : 김재영 (녹색아카데미)

  1. 뉴턴이여, 나를 용서하시길! (8/13)
  2. 절대공간은 존재할까?(8/20)
  3. 아인슈타인과 가우스와 비유클리드 기하학(8/27)
  4. 드디어 일반상대성이론이 만들어지다 (9/3)
  5. 일반상대성이론을 푼다는 것 (9/10)
  6. 일반상대성이론의 수용, 오해, 해석 (9/17)
  7. 르메트르와 앨퍼 : 허블과 가모프에 가려진 우주론자들 (9/24)
  8. SF와 상대성이론 (10/1)
  9.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론 (10/8)
    (매주 화요일 업로드됩니다.)

광대한 우주에 대한 열망은 고대의 수많은 신화로부터 최근의 SF 영화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왔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반상대성이론이 여기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은 SF 문학과 영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2015년 10월 21일. 이것은 미국 로버트 제메키스 감독의 영화 “백투더퓨처”에서 타임머신의 역할을 하는 자동차 드로리안의 시계에 찍힌 날짜이다. 1985년에 개봉한 영화에서 상상한 과거와 미래로의 여행은 30년 전인 1955년과 30년 뒤인 2015년이었다. “백투더퓨처”의 제목은 미래로 돌아간다는 의미인데, 상식에서는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때이고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때 뿐이다.

[그림 1] 영화 <백 투 더 퓨처> 예고편

시간여행은 우주여행과 더불어 SF에서 매우 다양하게 다루어진 단골 소재이다. 그런데 시간여행은 그냥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의 산물일까, 아니면 과학의 법칙들로부터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어서 단지 현재의 기술로 가능하지 않을 뿐일까? 새로운 물리학인 상대성이론은 시간여행의 가능성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물리학이론으로서 상대성이론은 이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지만, 인류에게는 SF라는 멋진 장르가 있다. 흔히 ‘공상’ 과학소설이라고 잘못 표현되기도 하는 SF는 과학에 기반을 둔 독특한 창작영역이다. 대개 소설을 중심으로 하지만 이제는 영화에서도 상당히 비중이 큰 분야가 되어 있다.  

상대성이론의 시간 늦어짐 효과와 쌍둥이 효과를 이용하면 한 시간여행을 다룬 대표적인 SF 작품으로 L. 론 허버드의 “미래로 돌아가다”(1954)를 비롯하여, 로버트 하인라인의 “시간의 블랙홀”(원제는 Time for the Stars, 1956), 폴 앤더슨의 “타우제로”(1967), 진 울프의 “짧은 태양 이야기”(1999-2001) 등 주옥같은 작품들이 있다. 조 홀드만의 “영원한 전쟁”(1972-1975)은 상대론적 시간여행의 충격을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온 미군이 겪었던 문화충격과 비유하여 잘 묘사하고 있다. 

최근에 5편까지 나온 “터미네이터”는 스카이넷 또는 제니시스라는 이름의 기계가 인간 저항군의 지도자 존 코너를 미리 제거하기 위해 과거로 암살자를 보내는 이야기를 축으로 삼고 있다. 공간만을 볼 때,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면 저곳에서 이곳으로 이동하는 것도 원칙적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그림 2] 터미네이터 시리즈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되고 있는 <터미네이터 2>

그러나 시간의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때에서 저때로 갈 수 있다면 저때에서 이때로 되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간과 공간의 결정적 차이이다. 그러나 이런 직관은 어디까지나 상대성이론 이전의 물리학의 법칙에 따른 것이다. 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이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4차원 시공간의 부분임을 밝혔다. 나아가 일반상대성이론은 시공간이 물질과 얽혀 제 나름의 독특한 구조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밝혔다. 

과거로 가서 현재 또는 미래를 바꾼다는 이야기는 테리 길리엄의 영화 “12 몽키즈”(1995)의 핵심 아이디어이기도 하다. 테리 길리엄은 1962년에 개봉한 프랑스 크리스 마르케르 감독의 단편영화 “라 즈테(송영대)”에서 영감을 얻었다. 영화의 유명세를 힘입어 “12 몽키즈”는 2015년 1월에 13부작 텔레비전 시리즈로 다시 태어나기도 했다.

종말론을 신봉하는 테러리스트 때문에 치료약이 없는 변종 바이러스가 1996년 전 세계에 퍼진다. 인류 대부분이 죽고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지하에서 살아가는 암울한 미래 사회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원자’에게 시간여행을 시킨다. 시간여행을 통해 변종 바이러스가 퍼지기 전으로 돌아가 인류를 구원할 사명이 죄수 제임스 콜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림 3] 13부작 TV시리즈 <12 몽키즈> 예고편

시간여행이 가능하다손 치더라도 과거로 돌아가 인류의 역사를 모두 바꾸는 것이 가능할까? 물리학 법칙과 모순을 일으키지는 않을까? 널리 알려진 ‘할아버지 역설’은 일종의 귀류법이다. 만일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고, 우연히 나의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만나 그를 죽게 만든다면 나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애초에 과거로 돌아가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죽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이런 모순이 나타나기 때문에 시간여행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할아버지 역설’의 핵심이다.

스피어리그 형제의 영화 “타임패러독스”(원제는 Predestination)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한다. 시간여행을 해서 과거를 바꾸더라도 그것이 할아버지나 할머니처럼 다른 존재가 아니라 내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이라면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간여행이 제한없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약간의 균열이 허용될 수도 있는 짧은 기간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함으로써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더 높였다. 

[그림 4] 스피어리그 형제의 영화 <타임 패러독스> (원제 <Predestination>)

사실 ‘할아버지 역설’이 역설로 보이는 것은 시간에 대한 존재론적 직관을 이른바 ‘영원주의’에 두기 때문이다. ‘영원주의’는 세상의 모든 사건들이 먼 과거로부터 먼 미래로 결정론적 법칙에 따라 애초부터 마련되어 있고, 이것이 차근차근 펼쳐지는 것이 시간의 흐름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이에 따르면, 과거나 현재나 미래는 공간에서 왼쪽과 가운데와 오른쪽이 나란히 있는 것처럼 모두 존재하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나’는 그 중 한 순간만을 인지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현재주의’의 관점은 과거는 지나가 버린 것일 뿐 아니라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고 미래는 그 기억들로부터의 귀납적 추론에 따른 기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정말 존재하는 것은 현재일 뿐이다. 만일 ‘현재주의’의 관점을 지지한다면, ‘할아버지 역설’은 처음부터 발생하지 않는다. 오직 현재만이 의미를 갖기 때문에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 어떤 사건을 바꾼다면 그로부터 새로운 현재들이 새롭게 나타나는 것에 아무런 문제점도 생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러한 관점은 언뜻 봐도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 유아론적 접근이다. 

이에 대한 대안이 ‘가능주의’이다. 이에 따르면, 과거는 현재와 마찬가지로 정말로 존재한다. 기억 속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허구가 아니라는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어릴 때 사건들은 정말로 한 때나마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미래는 말 그대로 오지 않은 것일 뿐 아니라 결정되어 있지 않다. 지금의 어떤 계기들을 통해 미래는 얼마든지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다. 이 관점을 ‘자라나는 블록 우주’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는 실재하지만,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관점을 잘 보여주는 용어이다.

‘가능주의’의 관점에서는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 어떤 사건을 바꾸게 되면 ‘자라나는 블록 우주’에 가지가 생겨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 된다. 이렇게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세상은 모두 대등하게 진짜 세상이다. 시간에 대한 ‘가능주의’의 관점은 요즘 양자역학의 여러세계해석 그리고 초끈 이론의 덧차원과 평행우주의 개념과 맞물려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작년 11월에 개봉한 영화 “인터스텔라”가 한국에서 천만 명이 넘는 관객이 들 정도로 예상 밖의 흥행을 하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익숙하지 않은 물리학과 천문학 이야기뿐 아니라 전체적인 전개가 복잡했지만, 사람들은 여기에 개의치 않고 난해한 영화를 즐겼다. 멕시코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그래비티”의 관객이 3백만에 그쳤던 것과 대조된다.

[그림 5] 영화 <인터스텔라> 예고편

“인터스텔라”에서 특기할 것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이론물리학자 킵 쏜이 제작책임자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킵 쏜은 영화 “컨택트”에 자문을 했던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인터스텔라”에서는 맨 처음 대본 작업부터 미장센의 구성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으로 물리학에 기반을 둔 자문을 하는 역할을 맡았다. 거대한 블랙홀 가르간투아의 환상적인 모습은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아인슈타인 중력장 방정식을 일일이 풀어서 실제로 있을 수도 있는 블랙홀의 모습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가령 “인터스텔라”에서 우주선 ‘인듀런스’호가 우주정거장에 도달한 뒤에 가장 먼저 회전을 시작하는 장면이 나온다. 중력이 없는 공간에서 우주선이나 우주정거장을 회전시키면 중력이 있는 것과 똑같은 효과가 나온다. 이것은 중력이 회전에 의한 원심력과 마찬가지로 좌표계의 가속에 의해 나타나는 가짜 힘임을 잘 보여준다.

회전하는 우주선의 장면은 1968년에 개봉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에도 나타난다. 무중력 상태인 우주선에서 별도의 장치 없이 지구 표면에서처럼 걸어 다니기 위해서는 우주선을 회전시켜야 한다는 것이 바로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그림 6] 영화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 중, 우주선에 중력을 만들기 위해 회전하고 있는 모습

시간여행 못지않게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온 것이 바로 우주여행이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로 여행하는 것은 인류의 오래된 염원일 것이다. 허먼 멜빌이 “모비딕”에서 “나는 멀리 있는 것에 대한 멈추지 않는 근질거림으로 고통받는다. 나는 금지된 바다를 항해하여 이방의 해안에 착륙하고 싶다”고 말했던 것은 바로 이런 염원을 잘 표현해 주는 말이다.

이와 관련하여 아이작 아시모프와 칼 세이건이 인류 역사상 최초의 과학소설이라고 말했던 요하네스 케플러의 “솜니움”이 흥미롭다. 케플러는 1611년 무렵 “솜니움”(라틴어로 ‘꿈’이라는 뜻)이란 제목의 소설을 썼다. 이 소설은 케플러가 세상을 떠난 지 4년째이던 1634년에 출판되었다.

아이슬란드의 한 소년과 마녀인 어머니와 함께 악마로부터 레바니아라는 이름의 섬에 대해 듣게 되는데, 레바니아는 다름 아니라 달이었다. 이 소설에서는 레바니아, 즉 달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고, 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이 잘 그려져 있다.

[그림 7] 달에서 본 지구의 모습. 1968년 12월 25일, 아폴로 8에서 빌 앤더스(Bill Anders)가 찍은 영상이다. (사진 : NASA)

웜홀을 통한 우주여행을 잘 묘사하고 있는 매들렌 렝글의 “시간의 주름”(1963)을 비롯하여, 클리퍼드 시맥의 “태양의 고리”(1953), 고마츠 사쿄의 “끝없는 시간의 흐름 끝에서”(1965), 아이작 아시모프의 “신들 자신”(1972), 밥 쇼의 “별들의 소용돌이”(1976), 프레테릭 폴의 “양자고양이의 귀환”(1986), 잭 윌리엄슨의 “시간을 노래하는 사람들”(1991), 스티븐 백스터의 “질리 연작”(1994-2003), “다양체” 3부작(1999-2002), 댄 시몬즈의 “일리움/올림푸스 2부작”(2003~2005), 이영수의 “토끼굴”(2006) 등은 다른 세계의 모습과 그 곳으로 가는 여행을 그린 작품들로서 꼭 읽어보아야 할 SF이다.

SF는 어느 정도나 과학에 정확해야 할까? 킵 쏜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게 다음 두 가지 원칙을 제안했다. “첫째, 확립된 물리법칙에 위배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야 한다. 둘째, 모든 과감한 사변은 과학에서 나온 것이어야 하며,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어서는 안 된다.” 

이 원칙은 중요하지만, 동시에 과학이론 중에는 SF로 분류할 수 있는 풍부한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 꽤 있다는 점도 되새길만하다. 쥘 베른이나 H. G. 웰즈나 필립 K. 딕의 소설에 등장하는 내용들이 실제 과학연구의 동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1895년 웰즈는 “타임머신”을 통해 상대성이론이 나오기 전에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이는 이후 상대성이론의 전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SF에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새로운 관념, 물질과 에너지의 관계, 시간여행의 가능성, 새로운 우주여행 방법과 같은 여러 가지 참신한 활력소가 되었다. 그와 동시에 웜홀이나 다중우주와 같은 SF의 단골소재가 되는 주제들은 물리학자들이 일반상대성이론의 연구주제를 택할 때 좋은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SF는 과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림 8] 웰즈의 소설 <타임 머신> 초판 표지. (Wike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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