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독립하우스 살림 – 2. 내 똥이 검은 흙 되어 밭에 들어가다

2013년에 에너지독립하우스를 지었습니다. 집을 지어 살면서 운영하는 이야기, 어려움, 기술적인 기록들을 여섯 회에 걸쳐 공유합니다.

2019년 7월 5일
최우석 (녹색아카데미)

에너지독립하우스 살림
1. 에너지살림
2. 내 똥이 검은 흙 되어 밭에 들어가다
3. 봄철 실내 공기질은 덤
4. 하수독립, 버릴 것 없는 물살림
5-1. 에너지 독립의 여름과 겨울 (1/2)
5-2. 에너지 독립의 여름과 겨울 (2/2)


내 똥이 검은 흙 되어 밭에 들어가다


파시브하우스의 ‘파시브’는 ‘액티브’에 대비되는 말이다. 에너지를 이용하는 기술 중 외부의 에너지원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을 액티브기술(aktiv tech; active tech)이라고 한다면 파시브기술(passiv tech; passive tech)은 기왕에 주어져있는 에너지원이나 여건을 십분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다. ‘난방’, ‘냉방’이 액티브기술의 예이고, ‘보온’, ‘보냉’은 파시브기술에 해당한다. 파시브하우스는 이러한 파시브기술이 총동원되어 만들어지는 종합적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태양광발전 등 재생가능에너지원 액티브기술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적은 에너지를 가지고 효과적으로 목표를 이루게 해주는 파시브기술 역시 중요하다. 우리 호주머니 사정과 마찬가지이다. 돈을 많이 벌어봐야 씀씀이가 헤프면 적자를 면치 못한다. 헤픈 살림을 개선하지 않고 적자에서 벗어나자면 깨끗한 돈 더러운 돈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돈을 벌어대야 할텐데 그래봐야 끝이 안 난다. 많이 벌어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깨끗한 벌이만으로도 윤택하게 살 수 있도록 합리적이고 알뜰한 살림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파시브기술이 발전하고 널리 확산되어야 비로소 화석연료, 원자력없이 재생가능에너지원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미래가 열린다고 나는 믿는다.

파시브하우스인 우리집에는 여러 가지 파시브기술들이 들어와 있는데 이 중에는 직접적으로 파시브하우스를 이루는 기술도 있고, 독립적인 파시브기술도 있다. 후자 중 하나가 ‘퇴비화 변기(composting toilet)’이다. 물을 쓰지 않아 ‘마른 변기’, ‘건식 변기’라고 할 수도 있고, 쉽게 부르기로는 ‘생태 변기’라는 말도 있다. 여기서는 조셉 젠킨스의 The Humanure Handbook을 옮긴 <똥살리기 땅살리기>(녹색평론사)의 번역에 따라 퇴비화 변기라고 말해보련다.

에너지독립하우스 1호는 ‘에너지독립’ 이외에도 ‘화장실독립’과 ‘하수독립’을 이루고 있는데 화장실독립은 전적으로 퇴비화 변기 덕분에 가능하다. 우리집에서 나온 똥과 오줌이 울타리밖으로 나가지 않고 우리집 안에서 다 처리되는 것이다. 현대 문명의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수세식 화장실 시스템은 내 똥과 오줌을 내 눈으로부터 감추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다. 물만 내리면 눈 앞에서 똥오줌이 어디론가 쓸려가버리고 그 뒤부터 나는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그것은 똥오줌을 이동시키는 것일 뿐, 처리하는 것은 아니다. 집집마다 나온 똥오줌을 처리하기까지에는 훨씬 더 많은 에너지와 인력이 들고, 상당수는 처리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리집 똥오줌은 우리 땅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 과정은 이러하다.

우리집에는 스웨덴 회사가 만든 퇴비화 변기가 설치되어 있다. 직접 만드는 분도 있지만 우리는 아주 잘 설계된 제품을 사서 쓰는 방식을 택했다. 신중하게 찾은 끝에 아주 오래도록 잘 쓸 수 있겠다 싶은 물건을 골랐고, 마침 한국에 수입공급하는 업체가 있어 큰 고생 않고 구입할 수 있었다. 이 제품은 대변과 소변이 분리되고, 배기팬으로 공기를 빨아내는 게 특징이다. 소변은 밖으로 빠져나가 소변통에 모이고 대변은 변기 안의 대변통에 화장지와 함께 모인다. 이렇게 대소변을 분리하면 냄새도 적고 퇴비가 되는 데에도 유리하다. 또 공기를 빨아내게 되면 변기 앞에 가도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아 수세식 변기를 쓰는 집보다도 더 화장실이 청결하고 상쾌하다. 물론 변기에 장착된 배기팬으로 공기를 배출하면 전기가 소비되고 실내의 따뜻한 공기를 밖으로 그냥 내보내게 되는 낭비 요소가 있다. 하지만 우리집은 열회수환기장치가 24시간 돌아가는 파시브하우스이므로 우리집 환기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었다. 제조사도 이 점은 몰랐을텐데 배기 방식의 퇴비화 변기는 파시브하우스와 아주 찰떡궁합이라는 걸 내가 발견한 셈이다.

변기 비우는 과정 1~4

두 사람 사는 우리집 대변통은 대체로 한 달 보름이나 두 달에 한 번 정도 비워준다. 변기를 비우는 일은 내 담당이다. 특별히 정해진 방식은 없지만 나는 이렇게 한다. (1)먼저 변기 뚜껑을 열고는 어지럽게 섞여있는 똥과 휴지 위로 톱밥을 예쁘게 덮어준다. (2)발효에 도움이 되라고 미생물혼합액인 EM을 톱밥에 뿌려주고, (3)썩는 비닐을 묶어준다. (4)그리곤 통의 뚜껑을 덮어서, 실외로 내간다. (5, 6)얼기설기 만든 퇴비간에 썩는 비닐 채로 내용물을 붇고 마른 풀이건 생풀이건 뜯어다가 덮어준다. 통은 잘 씻어 말리고 앞서 마련해둔 새 통에 톱밥을 약간 깐 뒤 썩는 비닐을 덮어 다시 변기 안에 자리잡아주는 걸로 변기 비우는 일은 끝난다. (7, 8)물론 이 사이에 정성스럽게 변기 안팎도 닦아주어서 깨끗한 상태를 유지한다. 두 달에 한 번 대변통 비우는 일을 하고 나면 자못 뿌듯하다.

변기 비우는 과정 5~8

퇴비간은 두 칸으로 되어 있다. 한 칸에는 그 해 나온 대변들을 차곡차곡 모아 발효시키고, 또 한 칸에는 전 해 대변들이 숙성되고 있다. 4월이면 본격적으로 모종들을 심기 전에 이렇게 이태 발효시킨 똥거름을 밑거름으로 텃밭에 넣어주는데 이 때는 늘 작은 감동이 있다. 내 몸에서 나올 때에는 더러운 똥이었던 것이 그저 한 데 모아 풀만 덮어두었을 뿐인데 채 두 해가 되기 전에 검고 향긋한 흙으로 바뀌어 있다니 마법같은 일이 아닌가. 이게 똥이었는데 하는 생각에 처음에는 주저되기도 하지만 용기내어 맨손으로 한 손 가득이 퍼다 만져 보고 냄새도 맡아 보면 영락없는 흙이다. 그렇게 될 줄 알고 있었더라도 매해 신기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봄이 되면 똥으로 만든 거름을 텃밭에 넣는다

대변통 비울 때에는 뭔 두 사람이 이렇게 똥을 많이 누나 투덜대곤 하는데 봄에 퇴비간 비워 밭에 넣을 때에는 밖에서 누고 들어온 똥이 아쉽기 그지없다. 원래 인색한 위인이라 이것저것 아까운 게 천지다만 우리집 똥살림을 시작한 뒤로는 물에 쓸려보낸 똥도 아깝다. 잘 익히면 거름인데 거름 떠내려 보내 아깝고, 그냥 두면 거름될 것을 깨끗한 물 써서 치우느라 에너지와 인력 들여 정화를 해야 할테니 두 번 아까운 노릇이다. 똥 떠내려 보내자고 사방 구석구석까지 똥길 만드는 기반시설 비용까지 생각하면 세 번 네 번 아깝다.

이 밖에도 손바닥만 한 마당 하나 있다고 울타리 안에서 순환시킬 수 있는 것들이 더 있다. 마당에는 작은 들통을 땅에 심어둔 곳이 있다. 들통 아래에 구멍을 많이 내고 통 안에 채소와 과일 껍질이며 부엌에서 나오는 유기물 쓰레기를 넣어두면  지렁이들이 드나들면서 음식 부산물을 흙으로 만들어준다. 지렁이 흙공장이라 할 만하다. 여기서 나온 흙도 봄에 텃밭에 넣는다. 모아만 주면 지렁이들이 알아서 해주니 이 또한 신선놀음이다.

지렁이 거름통 만들기와 거름되는 과정

집 바깥에 있는 소변통도 우리집에선 거름 곳간이다.  두 사람이 써도 50리터들이 통이 일주일이면 다 차는데 이 소변으로 매주 텃밭에 웃거름을 준다. 이 소변통 역시 우리집 퇴비화 변기 회사 제품인데 여기에 수도를 연결하여 틀면 저절로 소변과 물이 1:8로 섞여 나가도록 고안된 물건이다. 일정한 압력의 물이 지나갈 때 통 안의 소변을 빨아올려 함께 나가는 것이다. 보통 묵히지 않은 소변을 바로 주면 작물이 타죽지만 이렇게 1:8 비율로 섞어 주면 바로 나온 소변을 섞어주어도 작물에 해가 없다. 우리집 텃밭은 크기도 채 몇 평이 안 되고, 이렇다 할 노하우나 부지런함도 없으니 망하기 딱 좋은 여건인데 해마다 달고 맛있는 열매들이 다 먹기 힘들만큼 풍성하게 나는 것은 우리집 똥오줌 거름 덕분이 아닐 수 없다.

소변거름통

아마도 우리집 똥과 오줌, 음식물 부산물들을 액티브하게 처리하려 했다면 무시못할 에너지와 노력, 장비, 공간 등이 필요했을 것이다. 말려서 태워도 연료가 들었을 것이고, 물과 섞인 것을 가라앉히고 분리한 후 호기성 미생물 분해를 한다해도 과정이 단순치 않을 것이다. 하천이나 바다에 그냥 방류를 하게 되면 더 문제가 심각하고 어디 땅에다 파묻으려 해도 심난하다. 하지만 현명하게 사는 길이 어떤 것일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진보된 파시브기술이 주어지면 대단한 돈과 에너지, 인력 없이도 약간의 수고만으로 아름다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내게서 나온 똥오줌이 달고 맛난 푸성귀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더 많은 사람들이 파시브기술을 이용해서 손쉽게 똥살림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드는 텃밭철이다.

2019년 7월 5일
최우석 (녹색아카데미)
[작은 것이 아름답다](2017)에 실었던 글을 조금 고쳐 소개합니다.
다음 회 예고 : “에너지독립하우스 살림 – 3.봄철 실내 공기질은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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