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와 과학 – 10월 녹색문명공부모임 정리

10월 녹색문명공부모임 정리입니다. 이번 달에는 ‘고요한소리’에서 매년 주최하는 <중도포럼>에서 장회익선생님께서 발표하신 “중도와 과학” 이야기를 전달해드립니다. 다음 글은 선생님께서 발표하신 내용을 녹취한 것입니다. 어려운 내용이라 선생님의 발표를 글로 다시 읽으시는 것도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요약하지 않고 발표 내용 전문을 담았습니다.)

녹취, 정리 : 황승미 (녹색아카데미)


10월 녹색문명공부모임 (중도포럼 2019)
주제 : 중도와 과학
발표 : 장회익 (녹색아카데미)


일시 : 2019년 10월 12일
장소 : 조계사

***

안녕하십니까, 장회익입니다. 사실은 제가 불교를 잘 모르는 사람이고, 더구나 중도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연치 않게 이런 자리에 초청을 받아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다 얘기할 수는 없고, 주어진 시간 안에 요지만 추려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1.중도란 무엇인가

우선 중도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서 말씀해주신 활성스님께서 다른 곳에서 인터뷰하신 내용 중에 아주 간략하게 요약하신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편견을 벗어나 큰 눈으로 보는 것” – 활성스님 

이렇게 쉽게 정리를 해주셨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오늘 제 얘기를 위해서 이렇게 정리해보았습니다.

“표피적 관점을 벗어나 심층적 이해를 도모하는 것” – 장회익

제 나름대로 이렇게 풀이를 해서 말씀을 드려볼까 합니다.

2.경전에 나타난 중도 개념의 사례

무명(無明)을 조건으로 하여 .. (12연기)
우비고뇌(憂悲苦惱)가 생겨난다.

무명(無明)의 소멸로부터 … (12연기)
우비고뇌(憂悲苦惱)가 소멸한다.

“‘모든 것이 있다’라고 하는 이것은 하나의 극단이다. ‘모든 것이 없다’라고 하는 이것은 두 번째 극단이다. 이 극단으로 가지 않고 여래는 중(中)에 의해 법을 설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뒷 얘기가 좀 길지만 이렇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왜 ‘중’에 해당하느냐. 다시 말하면 ‘있다’ 혹은 ‘없다’ 보다 더 깊은 깨달음을 가지고 이해했다는 면이 한 가지 있겠습니다. 또 한 가지는 ‘있다’라고 하면 없어질 수가 없는데 없어지기도 하고 ‘없다’고 하면 생겨날 수가 없는데 생겨나기도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러한 극단은 적절하지 않으며, 더 깊은 진리를 보면 보다 나은 이해로 갈 수 있다라고 보았습니다. 

3.대승현론의 사중이제(四重二諦)

(1)유(有) : 세제(世諦), 공(空) : 진제(眞諦)

(2)유, 공 : 세제, 비공비유(非空非有) : 진제

(3)공, 유, 비공유(非空有) : 세제, 비이비불이(非二非不二) : 진제

(4)이 세 가지 이제(二諦)가 모두 가르침(敎門)에 속한다.
더 이상 기댈 것과 얻을 것이 없어야 비로소 참 이치(理)라고 불리게 된다.

불교가 중국으로 넘어오면서 중도라는 개념이 훨씬 더 심화되고 구체화되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 하나가 <대승현론>이라는 논서에 나오는 ‘사중이제’라고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여기서 ‘사중’은 네 가지 단계, ‘이제’라고 하는 것은 두 가지의 지혜라는 뜻입니다. 그 중의 하나가 ‘세제’, 즉 현상적인 지혜입니다. 또 한 가지는 ‘진제’, 즉 심층적인 지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 있다, ‘유’라고 보는 것이 세제에 해당한다고 할 때에, ‘공’이라고 하는 것이 진제다라는 것을 파악하는 것이 ‘사중이제’의 첫 번째 단계라고 합니다.

그 다음 두 번째 단계. 앞에 나온 ‘유’와 ‘공’이 다 합쳐져서 세제다. 더 깊이 보면 앞에서 진제라고 했던 것도 역시 세제다, 말하자면 현상적인 진리다 이거죠. 그리고 ‘공’도 ‘유’도 아닌 것이 진제다라는 것을 파악하는 것이 둘째 단계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 세 번째 단계. ‘공’도 ‘유’도 또 ‘비공유’까지 다 합쳐서 세제다. 앞에 나온 것이 다 세제이고, 또 이것과 다른 앞의 둘 ‘공유’도 아니고 ‘비공유’도 아닌 것을 파악하는 것이 진제이다. 그래서 셋째 단계에서는 훨씬 더 깊은 깨달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 다음 네 번째 단계. 계속 심층으로 가는 것보다는 이 세 가지 이제가 모두 교문, 즉 가르침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 자체가 진리는 아니고, “기댈 것과 얻을 것이 없어야 비로소 참 이치라고 불리게 된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깊은 내용은 뒤에 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4.이제합명중도(二諦合明重道)

비생비불생(非生非不生)은 이미 중도(中道)이다.

생(生)을 중심으로 보면 세제중도(世諦中道)
불생(不生)을 중심으로 보면 진제중도(眞諦中道)

==> 이제각론중도(二諦各論重道)

세제 안에도 진제가 담기고
진제 안에도 세제가 담기니

==> 이제합명중도(二諦合明重道)

그리고나서 몇 장 넘어가면, 이제합명중도라고 해서 중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까는 ‘유’와 ‘공’을 가지고 얘기를 했는데, 여기서는 ‘생’과 ‘불생’을 가지고 얘기하고 있어요.

그래서 ‘생’도 아니고 ‘불생’도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때에 이미 ‘중도’에 들어간다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생’을 중심으로 보면 ‘세제중도’, 즉 현상적인 지혜에 해당하는 중도가 되고, ‘불생’을 중심으로 보면 ‘진제중도’가 된다. 이것을 각각으로 보면 ‘각론중도’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제 안에도 진제가 담기고 진제 안에도 세제가 담기”기 때문에 이것을 합해서 보면 ‘이제합명중도’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5.사중이제의 새 해석

(1)유(有) : 세제(世諦), 공(空) : 진제(眞諦)

(2)유′ (앞의 공 포함) : 세제, 공′ : 진제
비공′비유′ (非空非有) : 이제합명중도(二諦合明重道)

(3)유′′ (앞의 공′ 포함) : 세제, 공′′: 진제,
비공′′비유′′ : 이제합명중도

(4)이들은 모두 우리가 찾은 상대적 진리이다. 
    참 이치는 오직 가능성만으로 남아있다.

이것을 제가 이제합명중도라는 말과 앞의 사중중도라는 말을 결합해서 해석을 해보았습니다. 새 해석을 통해서 과학이 이것과 어떻게 관계되느냐를 말씀드리기 위해서 해보았습니다. 

유를 세제라고 하자, 그러면 공이라고 하는 것이 진제다 된다고하는 것이 첫 단계입니다. 둘째 단계로 가면, 앞의 공도 이제 다시 세제가 되기 때문에 새로운 유가 되기 때문에 (프라임)을 붙여서 유라고 했고 이게 세제가 됩니다. 다시 또 새로운 공, 즉 공이 진제가 됩니다. 그래서 비공비유를 얘기할 수가 있는데 이것이 이제합명중도가 됩니다. 둘째 단계에서는 이제합명중도가 나오죠.

셋째 단계로 가면 이제 또 한 단계 더 들어갑니다. 앞에 나온 진제 공이 합쳐져서(프라임 을 두 개 ′′붙여서) 유′′가 되어서 이것이 세제입니다. 다시 여기에 해당하는 더 깊은 공′′가 있는데 이것이 진제다. 그리고 공′′도 아니고 유′′도 아닌 비공′′비유′′가 이제합명중도이다. 이렇게 셋째 단계까지 갑니다.

네 번째 단계에는, 이들은 모두 우리가 찾은 상대적 진리이고, 참 이치는 아직은 가능성만 남는다, 이렇게 해석을 해보았습니다. 

굉장히 오묘한 말씀인데요, 여기에 해당하는 적절한 사례가 현대과학에 있기 때문에 제가 오늘은 그것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6.현대과학의 공간 개념 : 고전역학

(1)유(有) : 세제(世諦), 공(空) : 진제(眞諦)

유(有) : 다름이 있다. 
수직방향 1차원, 수평방향 2차원 (世諦)

공(空) : 다름이 없다. 
공간 3차원 (眞諦)

==> 이제 (二諦)

제일 먼저 고전역학의 경우입니다. 3~4백 년 전에 나온 최초의 물리학인데요. 이 유와 공, 다시 말해 세제와 진제를 어떻게 보느냐 하면, 유라고 하는 것은 다름이 있다, 차이가 있다라고 보겠습니다. 공은 다름이 없다라고 보았습니다. 

실제로 수직방향 1차원과 수평방향 2차원을 서로 다르다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공간을 3차원으로 보죠. 수직방향과 수평방향으로 3차원으로 보는데요. 수평방향은 대등하게 봅니다.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직방향은 어떻습니까. 다르다고 보는 겁니다. 물건을 놓으면 떨어져요. 수평방향은 떨어지지 않는데 수직방향은 떨어지기 때문에 특별했던 것이죠. 그래서 달리 봤습니다. 옛사람들은 수직방향과 수평방향이 다르다고 보았고, 그래서 유라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가만히 알고 보니까 공간이 달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지구가 밑에서 당기기 때문에 떨어지는 것이지 수평과 수직이 서로 다른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수평 수직이 다른 것이 아니다, 비었다, 그래서 3차원 공간을 생각해냈습니다. 이것을 이해해내니까 3차원 공간을 통해서 고전역학, 즉 물건이 왜 떨어지는가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력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느냐하는 것을 다 예측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고전역학입니다. 고전역학은 기존의 세제를 새로운 진제로, 즉 3차원 공간을 발견한 데에서 비롯한다라고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사중이제의 첫 번째 단계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7.현대과학의 공간 개념 : 상대성이론

(2)유(有) : 세제(世諦), 공(空) : 진제(眞諦)

유(有) : 다름이 있다.
시간 1차원, 공간 3차원 (世諦)

공(空) : 다름이 없다. (실수-허수 관계)
시공간 4차원 (眞諦)

비공비유(非空非有)
==> 이제합명중도(二諦合明重道)

두 번째 단계에서도 유와 공을 얘기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다름이 있다는 유는, 시간과 공간은 다름이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공간은 3차원이지만 시간은 전혀 달리 흐르기 때문에 전혀 다르다고 보는 것이, 우리가 실제로 느끼는 유, 즉 현상적인 지혜입니다.

그런데 더 깊이 놓고 보면 같다는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은 근본적으로 같아서 4차원을 이룹니다. 수학적으로, 시간은 허수에 해당하고 공간은 실수에 해당하는 복소수로 놓고 보면 서로 동일합니다. 그래서 4차원을 이룬다는 것이고, 이를 통해서 상대성이론이라고 하는 놀라운 새 이론이 나왔습니다. 

4차원이 맞느냐, 아니면 1차원-3차원이 맞느냐. 1차원과 3차원으로 나눌 때 시간과 공간에 분명히 차이는 있습니다. 그러나 또 크게 보면 같아요. 그래서 이 둘을 합쳐서 이해해야하기 때문에 이제합명중도에 해당합니다. 사중이제의 둘째 단계가 상대성이론에서 구현되고 있습니다.

8.현대과학의 공간 개념 : 양자역학

(3)유(有) : 세제(世諦), 공(空) : 진제(眞諦)

유(有) : 다름이 있다.
운동량 4차원, 시공간 4차원 (世諦)

공(空) : 다름이 없다. (Fourier 변환 관계)
시공간-운동량 4차원 겹공간 (眞諦)

비공비유(非空非有)
==> 이제합명중도(二諦合明重道)

그런데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양자역학으로 가면 또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이번에도 역시 유와 공으로 나누어보면, 4차원 시공간이 이번에 다시 세제의 일부로 들어오고, 에너지-운동량이라고 하는 것이 또 하나의 공간을 형성해요. 에너지-운동량도 하나의 4차원, 시공간도 4차원. 양자역학 이전에는 이 두 개의 4차원이 따로 따로 있다고 보고 있었어요. 이것이 유입니다, 다름이 있다는 것이죠. 에너지-운동량과 시간-공간은 다르다고 본 것이죠.

그런데 양자역학으로 가면 이것이 다시 결합합니다. 그래서 에너지-운동량공간과 시간-위치공간, 이 두 가지가 사실 하나의 서로 다른 면이다. 그래서 그 다른 면은, 수학적으로 좀 기술적인 표현이기는 합니다만, 푸리에 변환이라고 하는 것으로 연결되어 있는 관계다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을 기반으로 사물을 보면 양자역학이 나옵니다.

그래서 다시 양자역학으로 가는데, 그렇다면 운동량과 시간공간이 전혀 차이가 없는가 하면 여전히 차이는 있지만, 그것이 별도의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습니다. 두 가지를 함께 이해해야하기 때문에 이것이 비유비공이 되어서 또 하나의 이제합명중도가 됩니다. 사중이제의 세 번째 단계가 물리학에서는 양자역학을 통해서 구현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네 번째 단계도 있는가. 아직은 없습니다. 물론 또 있을 수 있겠지만 아직은 없고, 빈 공간으로 남아있습니다. 앞으로 더 멀리 나아갈 수도 있지만, 넷째 이하는 열린 공간으로 남아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중이제에서도 네 번째 단계는 미제의 가능성으로 남아있습니다. 거기까지 놀랍게 일치하고 있어서 제가 소개해드렸습니다.

9.일체개공(一切皆空)과 현대과학

色卽是空          空卽是色
색 = 공             공 = 색
색 = 공 + 𝜶      공 = 색 – 𝜶

사례 :   물 = H2O + 𝜶    얼음 = H2O + 𝜶′    수증기 = H2O + 𝜶′′

H2O = 원소 + 𝜶 
원소 = 기본입자 + 𝜶 
기본입자 = 공(바탕질서) + 𝜶 (?)

색 = 공 +  𝜶1 +  𝜶2 +  𝜶3 …    공 = 색 + 𝜶1 +  𝜶2 +  𝜶3 … 

그리고 그 다음에는 불교에서 아주 중요한 개념인 ‘일체개공’입니다. 조금 전의 공은 유에 대한 상대적인 공입니다. 이번에는 아예 본질적인 공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이 공을 대단히 중시하지요.

조금 전에 포럼을 시작할 때 같이 읽었던 반야심경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 ‘색즉시공 공즉시색’이었는데요. 이것을 색=공, 공=색 이렇게 쓸 수 있습니다. 동어 반복인 것입니다. 색과 공이 동일해져버리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름만 다른 두 가지인데, 그것을 왜 그렇게 중시하느냐.

그래서 이대로는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까 하다가 이렇게 제안을 드립니다. 저렇게 +𝜶라는 것이 생략되어 있다. 그러니까 색=공이 아니고 색=공+𝜶이다. 그렇다면 +𝜶는 뭐냐. 공은 공이되 그 어떤 여건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색이 달라진다는 것이죠. 그래서 색=공+𝜶, 공=색-𝜶 이렇게 쓸 수 있겠습니다.

사례가 재미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물이 무엇이냐. H2O라고 하는 분자를 물이라고 한다. 물은 H2O이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얼음은 뭐냐, 얼음도 H2O다, 수증기도 H2O다. 이렇게 하면 H2O만 가지고서는 물, 얼음, 수증기가 구분이 안돼요. 

그런데 +𝜶를 집어넣어봅시다. H2O 분자들이 모여있으면 물이고, 일정하게 배열을 가지고 있으면 얼음이고 흩어져있으면 수증기에요. 다시 말하면 같은 것이 어떤 여건에 놓여있느냐에 따라서 색이 달라진다는 거예요. 

그런데 H2O가 진짜 공이냐. H2O는 다시 H라는 원소와 O라는 원소가 결합되어 있는 것이죠. 즉 어떠한 원소에 어떻게 결합되어 있느냐 하는 +𝜶를 넣어야 H2O가 물인지 얼음인지 수증기인지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원소는 무엇이냐. 원소는 산소, 수소, 질소 등등이죠. 이것은 또 기본입자의 결합이죠. 원소=기본입자+𝜶다 이거죠. 그렇다면 기본입자가 끝이냐. 아직은 잘 모릅니다. 더 기본적인 어떤 공이 있고 거기에 +𝜶가 되어서 기본입자가 되었다 이렇게 볼 수도 있겠죠.

그래서 가장 기본적인 것을 상상해볼 때, 색 = 공 +  𝜶1 +  𝜶2 +  𝜶3 …    공 = 색 + 𝜶1 +  𝜶2 +  𝜶3 … 이렇게 됩니다. 여기서 부수적인 여건(𝜶1, 𝜶2, 𝜶3, …)을 생략하고 보면 색즉시공이고 공즉시색이 되지만, 자세히 보면 여건에 따라서 공에서 이런 색도 나오고 저런 색도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를 할 수 있고 자연과학, 현대과학에서 이런 식으로 하고 있다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10.낱생명과 보생명의 동심원 구조

[그림 1] 온생명. 낱생명과 보생명의 동심원 구조

생명문제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생명을 어떻게 보느냐. 하나하나 낱낱의 동식물의 안에 생명이 있다고 보는 것이 우리의 상식적인 견해입니다. 말하자면 ‘세제’죠. 그러나 더 깊이 보면 그것이 진짜 생명이 아닙니다.

그것들이 다 모여서, 모든 것들이 서로 인연을 가지고 엮여 있죠. 그 엮여 있는 인연의 실타래를 전체로 보면 바로 그것이 생명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에 ‘온생명’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생명은 온생명이라야 진짜 생명이다, 그리고 하나하나의 동식물들은 상대적으로 낱생명이라고 부릅니다. 토끼, 나무 이런 낱생명은 온생명에서 낱생명을 뺀 나머지, 즉 보생명이 있어야 생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생명이 없으면 생명이 될 수가 없습니다. 

11.진정한 내 몸은 어느 것인가?

내 낱생명 (내 세포, 내 개체, 내 종족)은, 40억 년의 온생명적 진화과정이 축적된 최종 결정체.

내 온생명 (태양-지구 온생명)은, 현재 태양, 지구를 포함한 전역적 유기체.

내 낱생명과 내 온생명은 동심원적 구조를 지닌다.

12.진정한 ‘나’는 어느 것인가?

[그림 2] 진정한 ‘나’는 어느 것인가. ‘큰 나’와 ‘작은 나’.

진정한 ‘나’는 무엇인가. 낱생명으로서의 나도 나입니다. 그것은 작은 나, 불완전한 나이고, 진정한 나는 온생명 전체가 내 몸인 것입니다. 즉 큰 나, 온생명을 주체로 하는 나와 작은 나를 구분해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아갈 때에는 작은 나를 보살펴야 합니다. 그러나 정말 중시할 것은 진짜 내 생명은 온생명 전체이니까, 이것을 다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이것이 현대과학의 입장입니다.

13.온생명의 ‘나’와 불교의 ‘나’

불교 : 무아를 강조하면서도 자아를 부정하지 않음
온생명 : 동심원적 ‘나’의 구조

낱생명의 절대적 부정 <—> 무아의 강조
온생명의 중요성 제고 <—> 자아의 긍정

그렇다면 불교에서는 생명을 어떻게 보는가. 아주 흥미로은 얘기가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무아’를 강조합니다. 그렇다고 또 ‘자아’가 없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무아’인데 왜 ‘자아’를 부정하지 않느냐. 이게 굉장히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온생명 입장에서 보면 두 가지 ‘나’가 있죠. 여기서 낱생명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것의 뜻은 이러합니다. 보통 ‘무아’라고 할 때 ‘아’는 몸 쪽의 ‘아’를 얘기합니다. ‘무아’는 낱생명으로서의 ‘아’에 해당하는 것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지, 온생명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에서는 자아에 대해서는 중도의 입장을 취해요. 자아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해서는 말씀을 안해요. 그것은 온생명으로서의 나, 더 큰 나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석해보면 불교와 온생명론이 상당히 관계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14.맺는 말

오늘 삶의 바른 길을 찾지 못하는 원인 :
경전의 오래된 가르침이나 현대과학의 새로운 조명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를 제대로 깨우쳐 나갈 방법과 지혜를 갖추지 못함.

중도의 지혜 :
이 방법론의 신빙성을 불교에서 뿐 아니라 과학에서 함께 입증함으로써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깨우침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임.

아까 활성스님 말씀대로 현대 사회에 많은 문제점(기후변화 문제 등)이 있지요. 우리가 오늘 삶의 바른 길을 찾지 못하는 원인이 무엇이냐. 경전의 오래된 가르침과 현대과학의 새로운 조명, 없지 않습니다.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깨쳐나갈 방법과 지혜를 갖추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활성스님께서 훨씬 더 쉽게 말씀해주셨어요. 욕심 내지 마라, 지족해라. 굉장히 간단한 좋은 말씀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깨우침을 못가졌기 때문에 못알아듣죠. 기본적인 깨우침을 우리가 가져야할 필요가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중도의 지혜가 도움이 된다, 이것은 일종의 방법론입니다. 어떻게 하면 큰 이해로 갈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론의 신빙성을 불교에서 뿐 아니라 과학에서도 함께 입증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깨우침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 아닌가 하는 희망을 가져보는 것으로 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장회익 (녹색아카데미)
2019년 10월 12일

녹취, 정리 : 황승미 (녹색아카데미)

4 Comments

  1. 오늘 삶의 바른 길을 찾지 못하는 원인이 경전의 오래된 가르침이나 현대과학의 새로운 조명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를 제대로 깨우쳐 나갈 방법과 지혜를 갖추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말에 너무나 공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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