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모니 카로이의 물리학의 문화사 – 2.두 문화의 극복

쉬모니 카로이의 책 <물리학의 문화사>와 ‘두 문화’의 극복에 대한 글을 두 번에 걸쳐 소개합니다. 쉬모니 카로이의 이 책은 문화사적 맥락에서 물리학을 살피는 흔치 않은 책이며, 과학적 전문지식인과 인문학적 지식인 사이의 문화(두 문화) 차이를 극복하는 문제도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사진 위 : 부다페스트 대학 도서관. from wikipedia)

1편 “쉬모니 카로이의 물리학의 문화사 – 1” 보기

2019년 10월 22일
김재영 (녹색아카데미)


왜 ‘물리학’의 문화사인가?

쉬모니가 선택하는 주제는 물리학에서 다루는 대상과 밀접하다. 그리스 자연철학이나 인도 및 이슬람의 자연철학에서도 역학 및 수학적 고찰과 더불어 열, 전기, 자기, 빛 등과 관련된 주제는 대체로 포함시키고 있다.

976년에 출판된 쉬모니의 책이 “과학의 문화사”가 아니라 “물리학의 문화사”가 된 것은 영미 과학사의 전통에서 볼 때 낯선 면이 있다. 특히 물리학이라는 전문분야가 19세기에 정립된 것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오랜 자연철학의 전통을 과학사가 아닌 물리학사로 서술하는 것이 부적절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림 1] 인류의 두 가지 문화가 거쳐온 지적 여정을 비교한 그림 (출처 : 쉬모니 카로이, <A Cultural History of Physics>)

쉬모니는 전체적인 서술에서 명시적으로 물리학을 규정하지는 않지만, 다루는 내용으로부터 판단하면, 운동과 힘을 다루는 역학을 비롯하여 전기, 자기, 빛, 열 등과 관련된 주제와 원자에 대한 논의를 대개 물리학 속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를 토머스 쿤이 같은 해에 발표한 “물리과학의 발전에서 수학적 전통과 실험적 전통”과 비교해 보는 것이 유익하다.

[그림 2] 토마스 쿤(Thomas Kuhn, 1922~1996) (사진 : Johns Hopkins, Sheridan Libraries)

쿤은 고전적인 물리과학으로 천문학, 정역학, 광학, 수학(기하학 및 정수론), 화성학의 다섯 분야를 들고, 이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실험을 중시 여기는 베이컨 과학의 전통을 제시했다. 19세기에 물리학이 전문 분야로 정립되는 것은 빛, 전기, 자기, 열 등을 다루는 베이컨 과학이 고전적인 물리과학들과 마찬가지로 선험적인 개념들과 수학적 언어로 서술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림 3]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 (출처 : 쉬모니 카로이, <A Cultural History of Physics>)

쉬모니가 물리학이라고 부른 것은 쿤이 이 논문에서 말하는 물리과학에서 화성학을 제외한 나머지와 사실상 같다. 전문적인 과학사학자가 아니었던 쉬모니가 생명과학에 해당하는 주제들이나 더 광범위한 자연철학의 주제를 다루지 않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와 같이 고대 그리스로부터 20세기까지를 다루는 물리학의 역사 서술은 독일어권의 독특한 전통과 관련될 것이다. 가령 대표적인 독일어권의 물리학사 저술로 다음을 들 수 있다.

  • Johann Carl Fischer: Geschichte der Physik seit Wiederherstellung der Künste und Wissenschaften bis auf die neuesten Zeiten, 8 Bde., Göttingen 1801-1808.
  • August Heller: Geschichte der Physik von Aristoteles bis auf die neueste Zeit, 2. Bde. Stuttgart 1882-84.
  • Ferdinand Rosenberger: Geschichte der Physik in Grundzügen, 3 Bde., Braunschweig 1882-1890.
  • Edmund Hoppe: Geschichte der Physik, Braunschweig 1926.
  • Max von Laue: Geschichte der Physik, Ullstein Bücher 1959.
  • Wolfgang Schreier (Hrsg.): Geschichte der Physik. Diepholz 2002.

여기에서 다루어지는 물리학사의 범위는 대개 쉬모니가 다루고 있는 것과 대동소이하다.

헝가리와 두 문화


[그림 4] 스노우 경의 <두 문화와 과학 혁명>. 1959. (사진 : wikipedia)


쉬모니의 <물리학의 문화사>는 맨 처음부터 스노우 경의 ‘두 문화’를 거론하면서, 이러한 단절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쉬모니가 보기에 “인류의 문화는 하나의 단일한 전체이며, 문화의 유의미한 요소들을 어떻게 선택하고 전유하고 전달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겨나는 것은 오직 우리 문화의 소비자들에 대해서뿐이다.”

실질적으로 쉬모니는 물리학자들의 테크니컬한 관심을 문화적 맥락의 전개와 연관시킬 뿐 아니라 인문학적 지식인들도 물리학에서 사용하는 수학적 언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물리학의 문화사>가 헝가리에서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점이나 쉬모니 자신이 책의 제목을 그렇게 정한 것이 헝가리의 독특한 문화적 배경과 관련되지는 않을까?

쉬모니가 다닌 부다페스트 공과대학(Budapesti Műszaki Egyetem, BME)은 신성로마제국의 요제프 2세가 Institutum Geometrico-Hydrotechnicum이란 이름으로 1782년 설립했다.


197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가보르 데네시(Gábor Dénes 1900-1979), 1963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위그네르(Wigner Jenő Pál 1902-1995), 항공공학을 개척한 물리학자 카르만(Szőllőskislaki Kármán Tódor 1881-1963), 핵분열 연쇄반응, 핵발전, 전자현미경, 입자가속기, 핵물리학, 분자물리학, 표면물리학, 분광학, 수소폭탄 등으로 알려진 텔레르(Teller Ede 1908-2003), 실라르드(Szilárd Leó, 1898-1964), 수학자 에르되시(Erdős Pál 1913-1996) 등이 이 대학을 졸업했다.

[그림 5] 부다페스트 공과대학, 1782년 설립되었다. 이론과 실천의 조화가 대학의 모토이다. (사진 : wikipedia)

BME와 더불어 헝가리에서 가장 인정받는 대학은  1635년 설립된 부다페스트 대학(Budapesti Tudományegyetem, 현재 Eötvös Loránd Tudományegyetem)이다. 하프늄을 발견하고 1943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헤베시(Hevesy György 1885-1966), 경제학자 폴라니(Polányi Károly 1886-1964), 물리화학자이자 철학자인 폴라니(Polányi Mihály 1891-1976), 1961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베케시(Georg von Békésy 1899–1972), 마이크로웨이브 기술과 텅스텐 전구 연구 및 미터의 정의로 알려진 물리학자 바이(Bay Zoltán Lajos 1900-1992), 수학자 너이만 야노시 라요시(Neumann János Lajos 1903-1957) 등이 부다페스트 대학을 다녔다.

[그림 6] 부다페스트 대학 도서관. 헝가리 최초의 대학도서관으로, 1561년 당시 예수교 대주교에 의해 설립되었다가 나중에 부다페스트 대학으로 옮겨졌다. (사진 : WeLoveBudapest)

이들은 대체로 자기 분야에서 독창적인 영역을 개척하거나 기존에 연관되어 있지 않은 여러 분야를 묶어서 새롭게 접근한 사람들이 많다. 대개 어느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으며, 공학적 및 실용적 접근과 이론적 및 수학적 접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 전반에 이르는 기간의 헝가리의 문화적 특수성과 과학적 창의성은 상세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주제이다.

가령 Gábor (2005)는 헝가리 출신의 노벨상 수상자 14명, 너이만(폰노이만) 등의 대가 5명을 비롯하여, 바르톡, 솔티, 쇼로시 등의 독창적인 음악가나 사업가, 그리고 라카토슈 등의 철학자들이 보여주는 융합성과 독창성의 시대정신을 창의성의 모형에 따라 분석하고 있다.

Frank (2007)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시작된 1867년(Ausgleich/Kiegyezés) 이후를 분석하여 헝가리의 천재들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에 따르면, 첫째, 헝가리의 역사 자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창조적이어야 함을 잘 보여준다. 둘째 헝가리의 교육은 전통적으로 엘리트주의였으며, 학생의 우월성은 아주 이른 시기부터 독창적인 연구를 강조했다. 셋째, 19세기말부터 전통적 상류층이 붕괴하면서 유대인 등 다양한 민족이 헝가리에 편입하는 기회가 만들어졌다. 넷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경제가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인문학과 예술은 보수적인 통제가 이루어진 반면 과학과 기술이 크게 장려되었다. 다섯째, 1873년에 부다페스트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 설립되면서 문화와 교육의 중심으로 발전했다. 여섯째, 재능 있는 학생들을 발굴하여 영예를 주는 제도가 크게 융성했다. 일곱째, 외국, 특히 독일로부터의 문화 이전이 두드러졌다. 독일에서의 예술, 음악, 과학의 성과가 고스란히 헝가리에 흡수되었다.

[그림 7] 티보어 프랭크(Tibor Frank, 1948~). 부다페스트 대학 교수. 역사학.(사진 : wikepedia)


그러나 1918-1920년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하고, 특히 유대인 출신의 예술가와 학자들이 대거 헝가리를 떠나게 되면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이후 헝가리는 공화정과 왕정과 사회주의 체제의 혼란스러운 역사로 이어졌다. 쉬모니가 1970년대에 새삼 인류의 문화가 단일한 하나의 전체임을 강조하면서 물리학의 역사를 문화사로 서술한 것은 헝가리에서도 스노우가 지적했던 두 문화의 징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헝가리의 교육정책은 대체로 두 문화의 조화를 강조하는 것이었지만, 인문학보다는 과학과 기술이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었다.

헝가리의 교육에서 수학이 크게 강조되고, 헝가리 출신이 볼펜(Bíró László), 전화교환기(Puskás Tivadar), 변압기(Bláthy Ottó, Déri Miksa, Zipernowsky Károly), 플라즈마 TV(Tihanyi Kálmán), 전자현미경(Szilárd Leó), 핵발전시스템(Teller Ede), 홀로그래피(Gábor Dénes) 등을 처음 발명한 것을 염두에 둘 때, 헝가리의 인문학자들도 수학과 물리학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점을 쉽게 납득할 수 있다.

쉬모니 식의 접근은 대학 교육에서 폭넓게 물리학의 역사를 가르침으로써, 사람들이 “우리 시대가 이룬 성과를 적절하게 평가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가령 물리학의 문화사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최근의 과학기술의 엄청난 발전도 20세기 초나 17세기 말의 혁명적인 변화에 비하면 오히려 더디다는 생각에 동조할 수 있을 것이다. 쉬모니의 <물리학의 문화사>는 두 문화의 극복에서 매우 의미 있는 성과임에 틀림없다.  

* 이 글은 2014년 4월 한국과학사학회 춘계학술대회에 발표되었던 논문 중 일부입니다.
* 1편 “쉬모니 카로이의 물리학의 문화사 – 1” 보기

2019년 10월 22일
김재영 (녹색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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